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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논쟁에서 지지 않는 방법-상대방이 반대의 생각과 싸우게 하라

작성자 : 의사소통센터작성일 : 2020-03-03 09:28:41조회수 : 3121

토론 등을 하게 되면 논쟁을 벌여야 한다. 논쟁에서 이기려면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논쟁에 임했을 때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방송인 손석희 씨와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2010년 벌인 이른바 <개고기 논쟁>을 참고로 하여 논쟁의 기술을 배워보자.

 

손석희와 브리지트 바르도와의 2001년 12월 3일 인터뷰 <시선집중>

 

손: 브리지트 바르도 씨의 말씀을 듣고 설득당하는 쪽보다는 불쾌하게 여기는 반응이 더 많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르도: 불쾌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전투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손: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지식 없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비판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당신은 한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바르도: 한국의 번역된 동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동화에서는 많은 남자, 여자들이 한국의 전통적인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손: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를 먹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서 인정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바르도: 물론 저는 그러한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소는 먹기 위한 동물이지만, 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몇 개국을 제외한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개를 먹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나라라면 어떠한 나라에서도 개를 먹지 않습니다.

손: 소를 먹기 위한 나라도 있지만, 개를 먹기 위해서 키우는 나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개를 먹기 위해서 키우는 나라가 소수라고 해서 배척을 받는다면,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바르도: 나는 개를 먹는 것에 사람에 대해 결코 존중해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차이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거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증오한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번 12월 15일 축구협회 회장과 함께 회의가 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의 모든 실상을 고발할 것입니다.

손: 알겠습니다. 이 문제로 더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프랑스 민영 방송에서 한국 학생이 개고기를 간식으로 싸가는 장면이 방송된 바 있습니다.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왜곡한 데에 대해 프랑스가 사과해야 한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바르도: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계속해서 먹는다면, 그런 식으로 한국인들을 앞으로도 희화화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손: 그렇다면 우리나라 TV에서 프랑스사람들을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불통으로 희화화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바르도: 마음대로 하십시오. 프랑스에 대해서건, 프랑스사람에 대해서건, 나에 대해서건 마음대로 말하십시오. 다만 개고기를 먹지 마십시오.

손: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르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단 한 사람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해도 그건 불필요한 일입니다.

손: 그럼 새로운 사실을 말씀드리죠. 제가 아는 프랑스인은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인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온 미국인, 독일인 몇 명도 개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고 경험담을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금도 개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프랑스사람, 독일사람, 미국사람들 대다수가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즉 이렇게 과장해서 얘기해도 되냐는 겁니다.

바르도: (매우 화난 목소리로)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들은 절대로 개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고기인 줄 몰랐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개고기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은 돼지고기, 소고기라고 얘기했겠지요. 나는 여러분들과 더 이상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는 얘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어떠한 일이 닥칠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림)

 

손: 브리지트 바르도 씨는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 에 기초한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인이면 몰라도 프랑스, 미국인이라면 결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강변을 통해서 그녀가 동물애호가라기보다, 차라리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번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목적으로 기획됐지만, 개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를 가지고 민족적 차별로 귀결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1] 상대방이 반대의 생각과 싸우게 하라.

논쟁은 논리 싸움을 말한다.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려면 상대방과 싸우지 않으면 된다. 논쟁의 고수는 논쟁할 때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다. 그 대신 상대방이 제3의 적과 싸우게 만든다.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비꼬든 관계없이 맞서지 않는다. 상대방이 싸울만한 제3의 상대를 내세운다. 그때부터 상대방은 제3의 적과 싸우기 시작한다. 논쟁의 고수는 상대방이 제3의 적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칼을 휘둘러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상대방이 그 과정에서 약점을 보일 때 공격한다.

논쟁에서 제3의 적을 내세우는 방법은 자신의 이성을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으로부터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논쟁은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 간에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 모순점을 지적해 자신의 주장이 타당함을 입증해가는 과정이다. 상대방은 자연히 나의 주장이 틀렸음을 지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과 사회적 위신에 손상을 입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하게 된다. 평소에는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논쟁이 말싸움이 되고 결국에는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서로의 견해 차이를 줄이기는커녕 갈등만 더 키운다.

 

논쟁할 때 흥분하면 상대에게 지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렇기에 논쟁을 할 때는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감정이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저절로 떠오르는 느낌이나 기분, 마음 상태다. 그렇다 보니 이성의 힘으로 감정을 제어하려고 해도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공격적인 상황에서 흥분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반사적인 반응이다. 그러므로 논쟁에서 흥분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이성적 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나 논쟁에서 흥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뜨거운 것을 만지려면 우리는 보호 장갑을 먼저 손에 낀다. 말하기에서도 흥분을 자제하려면 이런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논쟁 중인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적대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상대방이 내가 아닌 제3의 적과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다.

 

논쟁에서 제3의 적을 내세워 자신은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감정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이제 상대방은, 논쟁의 대상과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적과 싸운다. 이를 통해 자신은 상대방과 논쟁을 하면서도 감정 대립에서 벗어난다. 상대방은 제3의 적과 싸우느라 분노하고 적개심을 느끼면서 감정적으로 흥분하지만, 정작 제3의 적을 만들어낸 쪽은 차분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적인 공격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지적 능력을 극대화한다.

둘째,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 대화법은 논쟁자 스스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개입시키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제3의 상대방을 내세우는 화법을 통해서 논쟁자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나 다른 감정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다. 상대방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공격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감성을 논쟁의 바깥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이런 예는 법학 전문가들의 사이에서 볼 수 있다.

검사가 증인에게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게 하는 질문을 계속하면 변호사가 일어서서 말한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증인에게 유도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검사가 말한다.

재판장님, 이 부분은 증인의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질문한 것이지 유도 질문이 아닙니다.

다시 변호사가 말한다.

재판장님, 이것은 증인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추측해 말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자주 봤을 법한 장면이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이 대화는 검사와 변호사가 주고받는 내용이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장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작 재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에 “검사, 계속하세요.”라고 짤막하게 말한다.

이것은 절차법에 따라 재판 절차에 관한 이의는 재판장에게 제기하도록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재판만큼 감정싸움이 벌어지기 쉬운 분야도 없다. 어쩌면 사람 간에 감정싸움이 극에 다다르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법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률가들은 이러한 감정싸움으로는 결코 진실과 정의를 분별해낼 수 없음을 알았다. 법률가들은 오랜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를 거친 끝에 재판장이라는 제3자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도록 하는 절차법을 확립하였다.

 

사람이 아닌 생각과 싸우게 한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상대방에게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 대신 반대의 생각을 내세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의 논리 전개에서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 개입을 막는다. 상대방이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적인 공격이 아닌 반대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에 집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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